이치란의 납량 기행칼럼

2020.11.27 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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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해 호수는 둘레가 360km이다. 자전거 마니아들의 천국이기도 하다. 지난 6월말 필자가 그 지역 삶의 현장을 찾아 2만 년 역사를 돌아보았다.     


청장고원 해발 3천m 푸른 바다 청해 호수    


필자는 지난 6월말 경, 청장고원의 도시 시닝(西寧)을 찾았다. 시닝은 중국 청해성 성도이다. 본래는 티베트 강 족들의 터전이지만, 지금은 한 족과 몽고 족 등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역사적으로 본다면, 너무나 많은 일들이 전개된 무대요, 삶의 현장이다. 칭하이 성(청해성)은 티베트 고원의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는데, 옛날부터 동 티베트로 불러 온 곳이다. 황하 강, 창 강, 메콩 강의 발원지이기도하다. 해발고도는 3천m가 넘는다. 탕구라 산맥, 쿤룬산맥이 버티고 있고, 연평균 기온이 –5~8 °C이다. 필자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아침저녁에는 15도를 넘지 않았고, 대 낮에는 25도에 육박하기도 했다. 7월 평균기온은 5~21 °C이다. 칭하이 성은 신장, 티베트, 내몽골과 같은 자치구를 제외하고 중국에서 가장 큰 성이다. 칭하이 성 인구 5백 5십만 명 가운데 반은 한 족 반은 티베트 족, 후이 족(회족), 몽고 족 등이 함께 어울려서 살고 있다. 칭하이 성이라고 하면 가장 유명한 것이 청해 호수이다. 


이 지역에는 약 2만 년 전부터 사람이 거주했고, 주민은 주로 강 족(羌族)이었다고 한다. 강 족(창 족)의 경우도 지금은 단일 민족이라기보다는 몇 개의 민족(강족, 저족, 한족)이 융합한 민족이 되었다고나 하겠다. 그렇지만 기원은 티베트 족이다. 역사적으로 칭하이 성에는 저 족이라고 하는 티베트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진나라가 멸망할 때 진나라 사람의 이주가 있었으며, 한나라 무렵에는 정치적 망명 등으로 한족도 이주하여 정체성이 다양해졌다. 칭하이 지역에는 이란계 소그드인도 존재하여 일부 합해졌다고 보는 것이다. 오호십육국시대에 창 족은 중국 영토로 침입했으며, 창 족이 세운 후진(後秦, 384년~417년)은 요장에 의해 건국된 나라이다. 후진은 건국자의 이름을 따서 요진(姚秦)이라고도 부른다. 창 족은 현재는 주로 칭하이 성과 쓰촨 성 북서부 지방에 거주하고 있다. 창 족의 성씨로는 요(姚), 공(功), 김(金), 구(俱), 강(羌)씨 등이 있다고 전해진다. 불교에서, 역경 삼장인 쿠마라지바(Kumārajīva 344~413CE)를 요진삼장이라고 하는데, 본래는 쿠차 출신이지만, 이 후진 시대에 중국에 와서 역경에 종사하고 금강경 등 많은 경전을 한역했다. 쿠마라지바는 구마라습, 구마라십, 구마라집으로 발음했는데, 한자로는 鳩摩羅什이라고 쓰고, 쿠차는 구자국(龜玆國)이라고 썼다. 줄여서 나습(羅什)삼장이라고 불렀는데, 습(什)을 의역하면 동수(童壽)란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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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 티베트 청장고원 3천m에 위치한 푸른 바다 청해 호수 선착장에 유람선을 타려고 관광객들이 북적 거리고 있다.  


기원전 61년에 한(漢)이 강 족을 평정하고 7개의 현을 설치, 이때부터 중원지방에서 칭하이 성으로 한족이 들어와 농사를 지으면서 한 족과 강 족이 함께 살게 되었으며, 기원전 4세기에는 토욕혼(吐谷渾)족이 들어와 한 족, 강 족과 섞여 살면서 경제를 발전시켰고 토욕혼 국을 세웠는데 토욕혼 족은 약 300년 동안 칭하이를 다스리면서 실크로드의 남쪽 부분을 개통하여, 서방과의 교통무역에 공헌하였다. 수나라 양제(隋煬帝,609년)때 토욕혼을 멸망시키고 칭하이의 동부와 남부를 지배하였다.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인해 청(淸)이 붕괴되고 칭하이 성은 북양(北洋)의 군벌지배 하에 있게 되다가 1929년 국민당 정부에 의해 칭하이는 성으로 승격했다고 한다.     


오늘날 칭하이 성에서 칭하이 호(청해 호)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해발 3,2053m의 고원에 위치하며 4340㎢의 면적과 27m의 수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호수 안에 작은 섬들이 있다. 칭하이 호 주변에 흩어져 있는 섬들은 모두 33개이다. 칭하이 호는 대체로 건조 기후이며 호수 주변은 대초원지역이다. 칭하이 호는 세계적인 철새들의 도래지이다. 칭하이 호는 철새들의 겨울철 이동경로 중 하나이다. 칭하이 호는 함수호(염분이 많은 호수)로서 호수 주변에서는 동충하초가 생산된다고 한다. 호수 동쪽은 해동, 남쪽은 해남, 북쪽은 해북이라고 부르며 주로 티베트 족들이 거주하고, 해서(海西) 방면에는 몽고족들이 살고 있다. 이 지역의 몽고족은 13세기 칭기즈칸이 서하를 함락하고 이 지역을 휩쓸면서 이동한 몽고족이 아니라, 몽고제국이 망하고 난 다음, 막북 시대, 중국의 동북 지역에 있던 몽고족이 이동해 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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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해 호수를 끼고 주변에는 드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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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해 호수 북쪽 저 멀리 기련 산맥에 6월 눈이 쌓여 있다.    


칭하이 성은 곳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당나라 때는 토번 국에 굴복하여 당나라 공주를 토번 왕에게 시집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문성공주(文成公主, 623년경~ 680년)는 토번 손챈감포 왕의 제2왕비로 640년 토번으로 시집가서 40여 년 간 그곳에서 살면서 두 나라의 우호와 장족의 문화 발전에 기여했다고 한다. 독실한 불교신자로, 손챈감포의 제1왕비 브리쿠티 데비와 함께 티베트에 불교를 전파하는 큰 역할을 했다고 하며, 시닝에서 라싸로 가는 험한 길에는 곳곳에 그녀가 지나가던 흔적들이 남아 있어서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중국 청장고원 시닝.청해호= 이치란 박사(매일종교신문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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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하이 성에서 가장 큰 티베트 겔륵빠의 쿰붐사원(탑이사=타얼스). 티베트 겔륵빠의 6대 사원의 하나로서 겔륵빠 개산조인 쫑까빠의 고향에 3세 달라이 라마가 쫑까빠를 추모하여 1583년에 이 사원을 세웠다. 한 때 이곳 사원대학에는 수천 명의 라마들이 공부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