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 정초기도법회

2020.11.27 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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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초기도법회



 




사진1: 표충사 법당 대광전에서 기도드리는 신도님들과 스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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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절에서는 음력 정초가 되면 아주 바쁘다. 불자님들은 절에 와서 불공을 드리고 정초기도 법회에 직접 참가 하시는 것을 좋아한다. 표충사에서도 정유년 정초 7일 기도기간에 신도님들께서는 매일 법회에 참가하시어 정성껏 기도를 드리는 것을 보면서 불자님들의 신심에 감동을 받는다. 사실, 한국 사찰에서는 이런 기본적인 신앙 활동을 무시할 수가 없다. 아무리 법회 위주의 사찰운영을 하려고 해도, 수천 년 내려온 이런 전통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은 어렵다. 서양종교의 영향으로 절에서도 의자를 놓고 교회나 성당처럼 법회를 하려고 했지만, 불자들은 잘 적응하지 못하고 불교 전래의 전통에 익숙해 있다.



남방불교에서는 불자님들이 바로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그 자리에서 공양이 끝나면 법문을 듣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법회가 이루어진다. 물론 큰 법회가 있을 때에는 별도로 큰 홀 같은 곳에서 행해지지만, 대체로 소규모의 스님들에게 공양을 대접하고 법문을 듣는 형식을 취한다. 하지만 동아시아 불교권인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일단 법당에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법당에서 법문을 듣거나 아니면 사람이 많으면 설법전 같은 큰 홀에서 법회를 거행한다. 우리나라 절들은 거의가 법당에서 부처님께 불공을 드린 다음, 바로 법회를 하는 경우가 많다. 표충사에서도 정초기도기간에는 법당에서 기도불공 위주의 법회를 하는데, 법회가 끝나기 전 필히 간단하게나마 법문을 해주고 있다. 너무 길면 신도님들이 지루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짧게 20분 내외에서 아주 기초적인 교리나 개략적인 불법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요즈음은 신도님들도 수준이 높아서 사찰 내에 교리반이나 경반을 따로 운영해서 불교이론을 체계적으로 강의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법당에서 기도불공이 끝나면 그것으로 법회가 마무리된다. 하지만, 스님들이 열의를 가지고 잠시나마 틈을 내서 법문을 들려주어야 한다.



도심사찰에서 법회위주의 사찰운영을 시도하지만, 한국의 불교의 오랜 전통이 금방 바뀌지가 않는다. 한동안 교리법회 경전읽기 등이 유행하다가 최근에는 다시 기도위주의 신행활동이 대세를 이루는 것도 한국불교의 이런 오랜 전통을 일시에 혁신하기가 어려운 이유 때문이다. 불교라는 종교의 특성상, 신행활동의 형태에 대해서 급격한 변화는 신중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



 




사진2; 서래각 선원 왼편 뒤로 문필봉이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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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선원 같은 데에서는 번거로운 의식을 생략한다. 조석예불마저도 죽비로 대체한다. 죽비 세 번 치면 그것으로 끝이다. 선객에게는 좌선이 중요하므로 촌음을 아껴서라도 참선을 해야 하므로 예불하는 것도 죽비로 대신하고 좌선에 집중한다. 선원에 불공이 들어와도 부처님 전에 가서 간단하게 절 세 번하고 죽비만 치면 그만이었다. 그렇다보니, 아주 근기가 수승한 신도가 아니면 이런 기도불공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보통의 신도님들은 부처님 전에 불공을 오래 드려야 만이 큰 공덕이 되는 것처럼 생각한다. 이미 불공을 드린다는 그 마음이 바로 공덕이 되고 기도가 되지만, 사람이란 이런 가시적인 의식(儀式)이 있어야 종교적인 만족을 갖는 것이다. 우리나라 절들은 이렇게 정초에 기도불공을 많이 드리기 때문에 그나마 바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바쁜 것도 한국 사찰의 전체적인 현상은 아니다. 승려 수도 줄고 있지만, 신도 수도 줄고 있어서 이런 풍경도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사찰운영에 대한 현대적인 경영마인드가 도입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방법을 당장 바꾼다는 것도 쉽지 않다. 사찰도 시대에 맞게 관리 운영되어야 한다. 총체적인 청사진이 필요하다. 막상 주지 직에 있다 보면 사찰 운영도 해야 하고 불교가 종교로서의 존재가치와 이상적인 신념도 전파해야 한다. 하나의 종교가 전통으로 확립되려면 수 백 년 수 천 년이 소요되고, 한번 정립되면 상당기간 존속되는 것이다.



 



재약산인: 도원 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