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 은사스님의 은혜

2020.11.27 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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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스님의 은혜



 



우리 불교에서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어렵지만,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불법을 만나기 또한 어렵다고 한다. 인생난득(人生難得)이요 불법난봉(佛法難逢)이다. 불교의 사생관에서 볼 때, 이 세상에 사람 몸 받아서 태어나는 것도 어렵지만, 불법을 만나는 인연은 더 지중하다는 말이다. 나에게는 불법만나는 일도 지중하지만, 절에 와서 스승 만나는 것 또한 너무나 중요한 인연이라고 믿는다.  



 




사진1: 영축산을 뒤로 하여 포근하게 앉아 있는 극락암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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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도인으로 알려진 경봉 큰 스님을 은사로 맞이한 인연이야말로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일이다. 문하에서 행자 생활할 때나 비구계를 받고 제방의 선원으로 대만으로 공부한다고 다닐 때만 해도 은사스님의 그림자가 얼마나 큰지를 몰랐었는데, 이제 나이도 들어가고 주지랍시고 하다 보니 은사스님의 은혜가 더더욱 큼을 느끼고 불현 듯 그리워진다. 큰스님은 법문하실 때 다음과 같은 시를 인용하셨다.



 



봄이 와서 봄을 찾으러 아무리 찾아다녀도 허탕만 치고

春在枝頭已十分(춘재지두이십분)

집에 돌아와 웃으며 후원 매화 가지를 휘어잡아 향기 맡으니

가지마다 봄은 이미 무르녹았네

盡日尋春不見春 (진일심춘불견춘)

芒鞋遍踏壟頭雲(망혜편답롱두운) 

歸來偶過梅花下(귀래우과매화하)

春在枝頭已十分(춘재지두이십분)



봄을 찾으려고 아무리 다녀도 봄을 못 보았는데 집에 돌아와 앞뜰에 매화 가지를 웃으며 휘어잡아 꽃향기를 맡아보니 봄이 거기에 어려 있다는 말씀이었다. 이제 와서 은사스님의 이 법문을 음미해 보니, 불법 또한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일상생활 가운데 있다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중국의 큰 스님들도 불법을 멀리서 찾지 말라고 하셨다.


불교가 인도에서 서역을 경유하여 중국에 들어오면서 인도의 원형불교는 모습이 많이 변용(變容)되었다고 한다. 지역의 문화와 풍습이 습합되면서 불교는 지역성을 띠게 된 것이다. 보편성과 함께 지역 특수성이 가미되다 보니, 나라마다 불교의 모습이 다소 달라지면서 다양성을 갖게 된 것이다.



 

사진2: 경봉서사께서 머물렀던 영축산 극락암 삼소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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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스님이 법문하실 때는 신도님들이 구름처럼 몰렸는데, 그 때는 은사스님의 깊고 높은 경지를 헤아리기가 참으로 불가사의했었다.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은사스님은 어느 날 법좌에 오르셔서 법문하시기를,



푸른 대 누른 꽃 이 경지여

신수염래부시진(信手拈來不是塵)

이 모두 우리의 수용하는 물건이니 마음대로 사용하는데 걸림이 없네

취죽황화비외경(翠竹黃花非外境)

백운유수노천진(白雲流水露天眞)

두두진시오가물(頭頭盡是吾家物)

신수염래부시진(信手拈來不是塵)



 



큰스님께서 하신 법문의 요지는 불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강조하신 것이다. 불교의 교주는 석가모니 부처님이시지만, 진리적으로 볼 때에는 마음이 청정하면 곧 그것이 부처님이요, 마음이 곧 부처님인데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이름에 불과한 것이고, 청정한 마음, 그 자리가 곧 부처님이라는 뜻이다. 인도나 중국이나 한국에서 도를 이루신 큰 스님들의 마음은 똑 같다고 보면 된다. 도의 경지는 국경이 없는 것이다. 절이나 스님들의 모습이 외형적으로는 다소 다를지라도, 부처님께서 전하신 심인(心印)은 같은 것이다. 밤하늘에 떠있는 달과 같은 것이 불법의 대의이다. 하늘에 떠있는 달은 하나이지만, 천강유수천강월(千江流水千江月)이다. 천강에 비친 달은 천개이지만, 실제는 하나이다. 불법이 인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비롯했지만, 서역 중국 한국에서는 다 똑같이 화현하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재약산인: 도원 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