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경허선사와 전법게

2020.11.27 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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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선사와 전법게




사진1: 경허 선사가 머물렀던 서산 천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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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 불교의 선 수행은 경허선사로부터 출발한다. 경허선사는 본래 강사였다고 한다. 강사로서 이 절, 저 절에서 강론을 하다가 어느 날 발심하여 참선을 하게 되었다. 경허선사의 <참선곡>을 보면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다.



홀연히 생각하니 도시몽중이로다 천만고영웅호걸 북망산무덤이요 부귀문장쓸데없다  황천객을면할소냐

생사윤회영단하고 불생불멸저국토에 상락아정무위도를 사람마다다할줄로 팔만장경유전하니 사람되야못닦으면...

생사윤회영단하고 불생불멸저국토에 상락아정무위도를 사람마다다할줄로 팔만장경유전하니 사람되야못닦으면...



읽고 또 읽어도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다. 경허선사는 문하에 기라성 같은 선사들을 배출했는데, 현대 한국불교의 이름난 선사들은 전부 경허문도나 다름없다고 할 것이다. 만공 혜월 한암 선사 등이 그 분들이다. 만공선사는 덕숭산 수덕사에서 수많은 납자들을 제접하여 오늘날 덕숭 문중의 조사가 되었다. 경허선사가 만공선사에 준 전법게는 다음과 같다.



 



<법자 만공에게 주다>



 



수산 월면에게 글자 없는 도장을 부쳐 주고 주장자를 잡아 한 번 치고 이르기를 “다만 이 말소리가 이것이다. 라고 하였으니 또 말해 봐라. 이 무슨 도리인가?”

또 한 번 치고 이르기를 “한 번 웃고는 아지 못커라, 낙처가 어디인가. 안면도의 봄물이 푸르기를 쪽과 같도다.” 하고 주장자를 던지고 흐음하고 내려오다.



 




사진2: 경허선사와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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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자 혜월에게 주다>



 



일체법을 요달해 알면

청산다리 한 관문으로 서로 싸바르노라.   

이와 같이 법의 성품을 알면

곧 노사나 부처를 보리라

세간의 형식은 놔두고

글자 없는 도장을 거꾸로 제창하노니

청산다리 한 관문으로 서로 싸바르노라.   






사진3: 경허화상의 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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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허선사는 도통한 선승으로서 경에도 밝았지만 글씨도 일품이었다. 경허(鏡虛, 1849년~ 1912년)선사는 한국 근현대 불교를 개창한 대선사이지만, 말년에는 한동안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돌연 환속하여 박난주(朴蘭州)라고 개명하였고 한다. 서당의 훈장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함경도 갑산(甲山) 웅이방(熊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1912년 4월 25일 새벽에 임종게를 남긴 뒤 입적하였다고 한다. 나이 64세, 법랍 56세였다. 본래 고향은 전주였다. 1849년 전주 자동리에서 아버지 송두옥(宋斗玉)과 어머니 밀양 박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여산(礪山)으로, 속명은 동욱(東旭)이다. 법호는 경허(鏡虛), 법명은 성우(惺牛)이다. 9세 때 경기도 과천 청계산에 있는 청계사로 출가하였다. 동학사 밑에 살고 있던 진사인, 이처사(李處士)의 한 마디, '소가 되더라도 콧구멍 없는 소가 되어야지.' 이 한마디를 전해 듣고는, 바로 깨달았다. 콧구멍 없는 소(牛無鼻孔處: 우무비공처)는 중국 법안종의 종주 법안(法眼) 선사의 어록에 실려 있는 선어다. 당시 경허의 시봉을 받들던 사미승 원규는 경허의 사제인 학명의 제자였고, 이처사는 사미승 원규의 속가 아버지였다고 한다.



 



1880년 어머니와 속가 형님인 스님이 주지로 있던 연암산 천장암으로 거쳐를 옮긴다. 경허는 연암산 천장암의 작은 방에서 1년 반 동안 치열한 참선을 한 끝에 확철대오하게 되고 "사방을 둘러 보아도 사람이 없구나"라고 시작하는 오도송을 짓는다. 천장암에서 경허의 '삼월(三月)'로 불리는 수월스님과 혜월스님과 만공스님이 출가하여 함께 수행하게 된다. 제자들과 함께 천장암에서 지내다가 개심사 부석사 간월암 등지를 다녀오기도 하였는데 이 때 경허스님과 제자들간의 많은 일화가 전한다. 1886년 6년 동안의 보임(保任)을 마치고 옷과 탈바가지, 주장자 등을 모두 불태운 뒤 무애행(無碍行)에 나섰다. 경허 선사의 수제자로 흔히 '삼월(三月)'로 불리는 혜월(慧月, 1861년-1937년), 수월(水月, 1855년-1928년)·만공(滿空, 1871년-1946년) 선사가 있다. 경허는 '만공은 복이 많아 대중을 많이 거느릴 테고, 정진력은 수월을 능가할 자가 없고, 지혜는 혜월을 당할 자가 없다'고 했다. 삼월인 제자들도 모두 깨달아 부처가 되었다. 이들 역시 근현대 한국 불교계를 대표하는 선승들이다. 현재, '북송담 남진제'의 두 큰스님의 경우에, 송담스님은 경허(75대)-만공(76대)-전강(77대)-송담(78대)의 계보이고, 진제스님은 경허(75대)-혜월(76대)-운봉(77대)-향곡(78대)-진제(79대)의 계보이다.



 



재약산인: 도원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