⑰사명대사의 수행편력

2020.11.27 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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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의 수행편력



 



제목을 사명대사의 참전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지만, 요즘으로 치면 참전임에 틀림없다. 사명대사는 한 수행인으로서 깊은 산중의 사찰에서 도를 닦고 있었다. 뜻하지 않게 승과를 볼 기회가 주어지면서, 선과(禪科)에 장원급제했다. 조선시대 보우 대사의 배려로 생긴 승과시험의 부활로 이루어진 일이었지만, 참으로 큰 인연이 아닐 수가 없다. 장원급제한 후에, 그는 직지사 주지를 거쳐서 선종 수(首) 사찰인 봉은사(서울 강남) 주지로 천거되었으나 사양하고 묘향산 보현사에 주석하는 서산대사 문하로 가서 정진했다.  



 




사진1: 묘향산 보현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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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북한 땅에 속하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삼천리금수강산이 전부 불도량(佛道場)이 었다. 사명대사가 이 세상에 계실 때만해도 한반도는 수행처도 많았고, 도인들도 많았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아마도 당대에는 서산대사의 명성이 자자했던 모양이다. 사명대사도 이런 당대의 고승인 서산대사 문하에서 공부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사명대사는 묘향산으로 가서 서산대사의 문하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서산대사의 한마디에 그만 대오(大悟)의 경험을 했다. 사명대사는 이곳 보현사의 서산대사 문하에서 3년간 수행정진하면서 그의 개침의 경지는 더더욱 깊어지고 무상의 지위에 올랐다. 서산대사의 문하를 떠나서는 금강산으로 향했다.   



 




사진2: 휴정 서산대사의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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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은 한 두 마디의 묘사로써는 설명이 부족하다 하겠다. 지금은 금강산 불교가 무너져 버렸지만, 한국동란 이전 만해도 금강산에는 대소 사찰이 수없이 많았다. 그야말로 불교의 성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금강산은 불일(佛日)이 증휘(增輝)하고 있었다. 사명대사는 세 번의 안거를 이곳 금강산에서 보냈는데, 그때 사명당은 <동해사>란 시를 썼는데, 여기에 한번 소개해 보겠다.



 



<동해사(東海辭)>

바로 그것은 군자의 도량(度量)이라 말함이로다. 

구만 리를 날아갈 큰 붕새(鵬)도 다 날지는 못함이로다.

백 척의 줄을 단 두레박으로 길어도 물을 다 길어 올리지 못하니

맑게 하려 해도 맑아지지 않고 흔들어도 흐려지지 않음이로다.

칠년대한(七年大旱)에도 그 물은 줄어들지 않으니 

구년 홍수에도 더하지도 아니하고 줄지도 않음이로다.

줄어들지도 아니하고 많아지지도 않으니

바로 그것은 군자의 도량(度量)이라 말함이로다.



 



금강산에 계시면서 동해의 어느 바닷가에서 읊으신 시이다. 정말 동해의 어느 경치 좋은 곳에 앉아서 저 먼 동해 바다를 바라보면서 시를 짓는 사명대사의 모습이 그려진다.    



 




사진3: 아름다운 금강산의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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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는 금강산을 거쳐서 동해를 따라서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태백산 영주 부석사  청량산 팔공산을 경유하여 지리산 등지를 순력했다. 사명대사의 문집을 읽다보면 전국 곳곳의 사찰에 대해서 시를 읊고 있는데, 팔공산 동화사에 대한 시 한수를 소개해 보자.



 



<동화사 상방에서 밤 종소리를 들으면서>



 



지금도 바람을 일으켜서 그윽한 숲이 떨어짐이로다.  

치는 대로 울어서 세월은 이미 깊었음이로다.

꿈속에서 처음 들으면 범의 울음에 놀랐고 

깨어서 다시 들으면 용의 소리가 읊조림이로다.

일찍이 영은사(靈隱寺=강우너도 삼척)에는 황혼에 울리더니

또한 한산사에는 밤중에 소리를 냄이로다.

몇 번이나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깊이 깨닫게 하니

지금도 바람을 일으켜서 그윽한 숲이 떨어짐이로다. 



 



재약산인: 도원 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