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 재약산에 달이 뜨니

2020.11.27 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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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약산에 달이 뜨니


재약산에 달이 뜨니, 표충사 앞마당이 훤해진다. 낮에는 그렇게도 북적거리던 드넓은 마당에도 밤이 되면 고요하기 그지없는데, 그나마 텅 빈 마당에 달빛이 비춰주니 정말 누구하고 이런 운치를 감상할까 하고 아쉬운 마음 금할 길이 없다. 인적은 드물고 달빛은 가득하니, 저절로 시인이 되는 듯, 한수라도 읊어야 기분전환이 될 듯하다. 주지스님이 외로울까 봐서 신도님들이 하얀 토끼 한 마리를 절에다 기증해서 서래각에서 돌보고 있다. 낮에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다 보니, 사찰 경내의 어딘가 구석에서 놀고 있다가도 밤이 되면 제 세상인 듯 절 마당을 이리 저리 마음대로 뛰어다닌다. 계수나무는 없지만 백일홍이 있어서 그야말로 재약산에 달이 뜨면, 표충사 마당에는 백일홍과 토끼와 달빛이 어울려져서 한 폭의 그림이 된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다면, 이런 풍경에 한 선승의 모습을 채워 넣으면 금상첨화의 한 폭 그림이 되리라.


사진1: 표충사 우화루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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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달을 사람의 마음으로 상징하고 도의 완성으로 은유하기 때문에 달에 대한 표현이 많다. 큰 스님들의 게송에서도 달월(月) 자를 넣어서 시를 짓는 경우가 허다하고, 산중에서 도 깨나 닦는 스님들치고 달을 모르면 말이 안 될 정도로 달과 불교 그리고 절간은 서로간의 관계가 가깝다. 도시의 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달도 산사에서는 쉽게 볼 수 있고, 밤길을 걷는 데에도 달은 너무나 고마운 동행하는 동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토끼에 대한 표현은 화두(話頭)로 사용된다. ‘토기 뿔 거북 털’이란 말이 있다. 선사들은 흔히들 이런 화두를 던진다. 불교에서 말하는 도나 성불이나 견성은 눈에 보이는 어떤 형상이 아니다. 깨달음 또한 어떤 거시적인 것이 아니다. 공기와 같은 것이 불교의 깨달음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깨달음은 존재하는 것이다. 


‘토끼 뿔 거북 털’은 선방에서 흔히 사용되는 하나의 화두공안으로서 조실스님과 납자 사이에서의 매개어(媒介語)이다. 


토끼 뿔이나 거불 털은 실재하지도 않는데 한쪽에서는 길다고 우기고 한쪽에서는 짧다고 우기는 것과 다름이 없다. 쓸 데 없는 시비를 할 때도 이 경구는 인용된다. 말없이 묵묵히 수행 정진하라는 선방에서의 선사님들의 가르침이다. 부단히 정진하노라면 어느 날, 우연찮게 무엇인가 얻어지는 날이 온다는 것이다. 


표충사는 사명대사를 떠나서는 상상할 수 없는 호국사찰이다. 건물 하나하나에도 사명대사의 얼이 서려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진2: 표충사 경내로 들어오려면 표충루(表忠樓)각을 지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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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사 경내로 들어오려면 표충사 누각인 표충루를 지나야 한다. 표충루 누각에서 재약산을 보노라면 천하절경이 따로 없다. 표충사는 사명대사의 영정을 모시기 위한 일종의 영각(靈閣)을 세울 목적으로 건립한 절이다. 그것도 불교와 유교를 합친 공동의 향사를 지내기 위한 절과 사당의 합성 공간이다. 사명대사의 생존 시에는 이 절의 이름이 영정사였고, 사명대사는 재약산 정상의 사자평에서 승병들과 훈련을 했다는 설이 전해 오고 있다. 그 때는 절의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표충사로 이름이 바뀌고 나서는 표충사에는 기백명의 스님들이 살았다. 


사명대사가 한반도의 북쪽 지방의 사찰에서 수행하실 때의 시 한수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산은 비어 있으니

원숭이들이 울어서 밤은 더욱 차가움이로다.

쓸쓸한 생각이여, 아무 말이 없으니

요해(遼海)는 멀고 봉황은 돌아오지 않음이로다.

하늘은 차가움이여, 사람마저 오지 않는데

초목 잎은 쓸쓸히 떨어지고 원숭이는 울어 슬퍼함이로다.

향을 피우고 긴긴 밤에 앉아 있으려니

달이 떠올라 하늘이 더욱 밝아짐이로다. 


재약산인: 도원 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