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붉은 닭의 해야 솟아라!

2020.11.27 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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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와 표충사-⑪ / 붉은 닭의 해야 솟아라!


 



붉은 닭의 해야 솟아라!


재약산의 겨울은 그다지 춥진 않지만, 그래도 1천 미터가 넘는 산이다 보니 제법 큰 산이라는 느낌이 간다. 한국의 산들은 아기자기한 맛이 든다. 그다지 높지 않으면서도 운치가 있다. 1월 1일에는 아침 일찍 재약산 사자평에 올라 동쪽에서 솟는 붉은 닭의 해를 맞이했다. 작년에는 붉은 원숭이의 해였다. 국가적으로 너무나 요란한 해였는데, 아직도 그 후유증은 가시지 않고 있다. 닭의 해를 맞이해서, 요사스러운 일들은 훨훨 던져 버려야 한다. 


사진 재약산의 겨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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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살다보면 산속 생활에 빨리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계절 감각에 민감해야 하고 옷차림 같은 것도 절기에 알맞게 민첩성을 발휘해야 감기라도 들지 않고 산중에서의 생활을 견딜 수가 있는 것이다. 한국의 절은 거의가 산중에 위치하고 있다. 산과 절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어서 상호 협력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들이다.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할 때는 사원은 마을 가까이에 있었다. 왜냐하면 아침에 탁발을 나가야 함으로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걸식에 지장이 있어서 수행자들은 마을이나 시가지 근처의 숲속 공원이나 동굴 속 아니면 큰 나무 아래서 생활했다. 


사진2: 재약산 표충사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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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만 있던 불교는 남.북 방으로 퍼져 나가면서 다소 변용을 겪게 된다. 중국으로 전파되면서는 중국적인 문화와 교섭을 통해서 도시는 물론이지만, 산속에도 절을 세우게 되었다. 한반도에 전해진 불교도 처음에는 왕도에 절을 세웠지만, 나중에는 차츰차츰 산중에도 큰 절을 세우게 된다. 이렇다보니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에 절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산 좋고 계곡 좋은 곳은 다 절이 앉아 있다. 절이 산에 존재함으로써 일장일단이 있을 수 있으나 한국적 지형에는 절이 산에 있어야 제 맛이 난다. 1천 7백년 한국불교사에서 절하면 산과 연결하지 않고는 상상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한국불교에서는 9산 선문이란 전통이 있고, 스님들은 산에서 수행하는 것을 정도로 여겼다. 


표충사도 제법 큰 산을 끼고 있어서 조선시대만 해도 많은 스님 네들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았다. 산으로 보나, 도량으로 봐서 기백명은 살 수 있는 공간이다. 요즘은 출가자 수가 감소하고 산중생활에 대한 묘미를 느끼지 않아서이지, 사실 산중만큼 수행하기 좋은 환경도 없을 것 같다. 나는 표충사에 와서 사명대사와 효봉 대선사를 만났고, 그밖에도 여러 대덕 큰 스님들이 이곳 표충사에 주석하시면서 법석을 펴셨음에 고개 숙인다. 조선시대 같은 때는 불교가 정말 박해 받으면서 고난을 겪었지만, 스님들은 산중에서 불교를 지켜냈던 것이다. 근대의 고승 효봉 대선사가 이곳 서래각에서 주석하시다가 입적하셨는데, 소납이 이곳 서래각에 걸망을 풀 줄 어떻게 알았으리요. 게다가 은사인신 경봉 대선사와도 교분을 돈독하게 나누셨다니 경봉 선사를 시봉했던 제자로서는 정말 감개무량할 뿐이다. 


효봉(曉峰)스님께서 경봉(鏡峰)스님께 보낸 편지를 독자들과 함게 공유하고 싶어서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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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봉스님께

금강산에서 한번 뵈온 지 20 성상이 지났습니다. 이제 거의 잊혀가던 중 홀연히 생각이 나서 편지를 쓰려고 붓을 드니 할 말은 많으나 종이가 짧구려.

도우(道友=함께 도를 닦는 벗)는 병술년 가을에 해인사에 와서 납자(衲者=수행하는 스님)들과 다섯 해를 지냈는데, 나도 해치고 남도 해치면서 헛되이 신도들의 시은(施恩=시주의 은혜)만 없애는 것 같아서 이제 비로소 깨달아 살피고 자리를 뜨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영취산 아래 불지종가(佛之宗家=통도사)는 나의 선증옹사(先曾翁師=몇대 위 스님) 용악화상(龍岳和尙)이 주석하시던 도량이라 내 비록 불초(不肖)나 감히 옛 어르신의 자취를 사모하여 이제부터는 남은 생애를 그곳에서 마칠까 하나이다.

뒤늦게 서로 만난 감이 없지 않지만 어찌 숙생(宿生=전생)의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삼월 열흘께 한번 찾아 뵈옵고 이제까지 소홀히 하였던 것을 사과하고 함께 지내기로 원을 세웠으니 물리치지 마옵소서. 

남은 말은 크신 법체(法體=몸) 청안하시길 빌 뿐입니다.

정월 25일 

도우 효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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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스님들의 편지에는 평소의 생각과 몸가짐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무엇보다도 도인(道人)으로서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음을 편지 행간에서 읽을 수가 있다. 효봉스님은 경봉스님보다도 나이가 위이지만, 겸손한 존대 말을 쓰고 있다. 불문(佛門)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는 도인을 지음객(知音客)이라고 부른다. 큰 스님의 편지는 바로 법문과 같은 법어(法語)와 같은 것이다. 


재약산인: 도원 법기